알고 지낸 햇수로 따지면 열손가락이 넘어가는 친구가 있다.
대학 때 만나 함께 살기도 했고 적적한 일상에 가끔 여행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밥도 먹고...
미주알 고주알, 내 이야기를 터놓는 편도 아니어서-
그냥 그 정도의 거리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사이.
난 이 관계에 불만도 없고 그러려니 했다.
원래 그래 왔으니까, 우리는 이런 사이였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혼자 감당하지 못할 만큼 아프다는 거.
아픈 것조차 몰랐는데 상태가 이상해 가만 들여다 보니 어, 아픈 거였네.
왜 아픈 거지, 살펴보니, 저 깊은 곳에 '섭섭함'이 큰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겐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다.
그런데 떠올리면 아프고 힘드니까 덮어두었다. 괜찮다, 그럼 괜찮아져야지, 나 잘 지내-
누구도 묻지 않았고 나도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진 줄 알았는데 한 겹, 한 겹... 차곡차곡 쌓일 줄이야.
그게 이렇게 펑, 터질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번엔, 사실은 아프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내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은 걸까,
공허한 헛바퀴를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관계를 유지해 온 건
어쩌면 이러한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름 큰 걸림은 없으니 적당한 온도에서 유지되어온-
그 이상의 위로, 그 이상의 공감, 그 이상의 교류는 무리였는데
혼자 기대하고 상처받고-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였다.
한바탕 휩쓸고 가고 나니 조금 평온해졌다.
남은 것은 우린 그냥 이런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물론 그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 수도.